서론 이 영화는 나니아 연대기:캐스피언 왕자가 아니라 그냥 캐스피언 왕자입니다. 이 점 중요.
그럼, 시작합니다.
13살짜리 캐스피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왠 삭디삭은 총각이 자리잡았을 때부터 느낀 불안감이 아주 제대로 적중하더군요. 중반부터 캐스피언과 피터 둘이서 주고받는 병맛 넘치는 하모니는 영화사상 최강의 듀오를 이룹니다. 대체 피터란 캐릭터를 왜 이리 험하게 다루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멍해있던 중, 드디어 깨달음이 뒤통수를 치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편 끝나면 더 이상 안 나올 캐릭터라 그거죠. (마지막 전투 편의 휴거장면은 논외로 하고.) 이걸 깨닫는 순간 굉장한 불쾌감이 들었습니다. 원래도 캐릭터를 이리 낭비하는 걸 혐오하는 편입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특히나 질이 나빠요.
영화의 무대는, 4남매의 황금통치기가 끝난 후, 아첸랜드의 코르 대왕과 스완화이트 여왕의 시대도 지나 텔마르의 나니아 정복으로부터 300년 동안의 암흑시대가 지난 후입니다. 수잔이 1300살 많다는 조크를 던졌죠? 그 1300년중 1/4이 혼돈의 시대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시기에 나니아와 텔마르 양쪽의 왕이 될 자라는 건, 필연적으로 말하는 동물들과 걸어다니는 나무의 시대, 위대한 사자가 전설이 아니었던 시대, 그 지혜와 질서를 탐구해서 되살리고 보존하는 구도자가 되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나니아 연대기 전체에서 연결자로서 캐스피언의 즉위가 차지하는 비중은, 반지군주에서 남북왕국이 통합되며 제4시대가 시작되는 메인이벤트에 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실제로 원작의 캐스피언은 순종적이고, 그렇기에 빠르게 흡수하는 좋은 학생이며, 4남매는 그런 캐스피언에게 살아있는 교과서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서 지극히 지저분하고 간단하게 지나가버린 결투씬과 그 전후 하나하나의 전례(典禮)들이 다 그런 역할이라고요! 침 흘리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결투에 참관할 권리를 가진 곰도! 텔마르 장군들에게 감탄을 자아낸 에드워드의 위용도!
그런데, 이걸 캐스피언과 피터를 대등하게 놓으면서 전부 깔끔하게 깨먹은 겁니다. 필연적으로 피터는 스승이 아니라 치고박는 또래가 되기 위해 대왕의 위엄이고 경험치고 깡그리 날려먹으셨고요. 하얀 마녀 씬은 또 뭐래요? 캐스피언도 뒷걸음 치고있는데 피터 니가 왜 혹하고 난리니 응? 아슬란이 모습을 안 보일만도 합니다. 재는 1편의 피터가 아니라 바디 스내쳐에게 몸 강탈당한 가짜에요. [..야; 그건 좀;;]
자, 진짜 공포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원작을 일말의 존중도 없이 갈기갈기 찢어서 대체 무슨 콜라주를 만들려고 하나 봤더니, 글쎄 수잔과 캐스피언의 로맨스를 만들려고 그랬다지 뭐에요. 어이야~ 어디갔니. 가출한 어이를 찾아요..OTL
그러니까, 피터를 지저분하게 만든 이유가 오빠랑 여동생 도둑놈의 신경전을 위해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리려고 그런거라고? 감독 미쳤나요? 저랑 싸우자는 거죠? 당신 인챈티드 감독 지원했다가 원통하게 짤리기라도 했어? 대체 1년에 디즈니에서 만드는 로맨스가 몇 편인데 끼워넣을 작품이 없어서 나니아에 들이대는건데? 인챈티드 좀 성공하니까 아무 팬터지에나 청춘 로맨스 끼워넣으면 성공할 줄 알았니?
...헉헉; 아 열받아..OTL
우리 리피치프 대장님 멋지게 뽑아주고[...TT], 베르나 전투 하나 그럴듯하게 연출해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요; 오리지널 요소 넣는 데도 정도가 있지, 엄연히 연대기인 작품을 이렇게 망가뜨려놓으면 다음편은 장사 안 할 겁니까? 1편의 승리의 로리콘[....] 툼누스하고는 차원이 틀려요 틀려;; (더 불안한 건, 앞으로 남은 허들은 캐스피언처럼 쉽지도 않다는 겁니다. 동녘호 결말의 그 구도적 메시지는 어쩔거며, 은 의자의 암울함은 델 토로라도 데려온데요?)
그나마 건질만한 요소를 좀 뽑아보자면.
1. 우리 예쁜 에드워드!!! 얘는 날카로운 첫 배신의 추억 이후로 나니아에서의 행보 한걸음 한걸음이 전부 속죄행입니다..TT (맏형이 사정없이 망가져 버린 이번 편에서마져)철저하게 형과 자매들을 서포트하며 움직이는 모습은 물이 오른 미모와 더불어 삭막한 영화의 한줄기 꽃입니다아아. T_T
2. 1편과 공통되는 요소가 하나 있는데, 수잔이란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원작과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습니다. 원래 수잔은 12사도 중 도마, 그러니까 "옆구리 상처를 찔러서 확인하게 해주세요"라는 캐릭터거든요? 나니아에 도착해서도 현실 도피가 제일 길고, 현실로 돌아가서는 제일 빠르게 잊어버리는, 좀 거칠게 표현하면 -나쁘지는 않은 의미에서-속물/현실 지향적인 성격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쪽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면서도 동생들을 보호하고 돌보기 위해,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번 캐스피언 편에서도 그런 해석을 드러냈고요. (원작의 수잔이라면 혼자놀기 캐릭터가 될리가 없죠;)
이 해석은 상당히 맘에 드는 편인데,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가면, 원작에서는 잘린 마지막 전쟁 편에서 수잔이 복권될 복선이 아닌가 싶어 살짝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참 먼 얘기지만요.
결론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분기점을 100점 만점에 50점으로 놓고, 일단 계절용 볼거리 영화로 그럭저럭이라는 점에서 70점 주겠습니다. 본론에서는 신나게 씹었지만[...;;] 관객들이 전부 원작 팬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 물론 제목에 나니아 연대기를 붙이겠다고 고집하면 저기서 25점 깎을 겁니다. [....]
참고로 조조에 카드 할인 붙여서 1,000원에 봤습니다 저. [..................]
덧. 싸게 봤다는 자랑 아닌 건 아시죠? 노파심에;; (결국 마지막까지 까는 분위기로;;)
# by 마스터 | 2008/05/16 01:35 | TALK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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